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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재글. 그 겨울의 탄생 #1

AzureL'ete title: 작가콘AzureL'ete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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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주르레떼입니다.

 

그 겨울을 만들고 나서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 겨울이 돌아오긴 쉽지 않을거라고.

하지만 광양을 다녀오고 나선 제 입이 방정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FA컵 우승을 기다리며 그 겨울을 만들며 밝히지 못한 배경을 글로 남기고자 하니 재밌게 읽어주시고 반응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1.

겨울이 되고 입김이 나올 만큼 추위가 무르익으면 으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고3을 앞두거나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수능이 그럴 것이고, 군것질을 좋아한다면 붕어빵이나 어묵이 그럴테다. 대구FC를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에게 추위가 회상시켜 주는 기억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 하는 것은 수능도, 붕어빵도 아닌 아마 2018년일 것이다. 벌써 몇 해가 지난 지금에도 우리들의 2018년은 희열과 충격 그 사이를 오가는 극적인 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2002년 월드컵에 느낀 감정들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정말로 2018년, 그 해는 소설과 같이 완벽한 기승전결이 1년 내내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대구FC는 태생부터 기반이 빈약한 클럽이었다. 팀을 창단하기 위해 노력했던 팬들의 목표와는 달리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는 월드컵의 열망을 정치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대책 없이 남겨진 월드컵 경기장에 적당한 변명을 마련하기 위해 급조 되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클럽 축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본과 인프라는 애초부터 높은 수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계속되는 패배와 성적 부진은 역사와 명분이 없는 클럽에게 더 큰 좌절감을 안겨다 주었다. 선수단이 지닌 경험과 성적에서 오는 자신감까지 모든 것이 결핍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팀이 생기고 난 후 응원하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 때가 최악인지 손꼽기 힘들만큼 잦은 난관에 부딪히곤 했다.

 

최악이라는 놈은 매정하고 잔인해서 우리가 착각하기 쉽도록 매 시즌 늘 낯선 모습으로 찾아왔다. 이런 광경은 마치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랑을 겪으며 느끼는 것들과 같았다. 사람들이 늘 지쳐하고 괴로워 한다는 그 연애처럼. 이를테면 이렇다. 언젠가 연애에 실패한 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 생글한 모습에 설레이고, 그 설레임 때문에 이번엔 다르겠지 라는 기대감을 잔뜩 품는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제서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감의 결은 달라진다. 손발은 맞지 않고, 어느 날은 잘 나가는 듯 싶다가도 기어코 틀어지는 순간이 지뢰처럼 나타나 발목을 잡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그 끝엔 결국 엉망진창이 되버린 배드 엔딩을 맞이한다. 이 패턴이 바로 대구FC 팬에겐 거의 빠짐없이 매년 반복 되었다. 그렇게 실패와 좌절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찰 나, 2018시즌이 시작된 후 전반기를 보내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이번에야 말로 정말 최악이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2018시즌이 시작되고 전반기 동안의 대구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실낱 같은 기대 속에 수많은 라운드를 지나쳤지만 겨우 힘겹게 1승을 거두는데 만족해야 했다. 어설픈 경기 운영과 거기에 더한 잦은 퇴장, 단기간 내 불안정한 조직력으로 연결된 팀 케미는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폭풍우 속 잎새와도 같았다. 스타 플레이어로 성장해가는 세징야를 필두로, 성장한 유망주들과의 조화를 꿈꾸며 시즌 전 기대했던 중상위권 싸움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졌다. 순위표를 들여다 보면 우리는 강등이라는 벼랑 끝에 겨우 몇 발자국 앞서 있을 뿐이었다. 더 나은 성적을 향한 열망 따위는 사치에 가까웠다. 그저 생존을 위한 부동과 투쟁을 끝없이 펼치는 먹이 사슬의 최하위 개체에 불과했다. 어느 팀을 만나도 이길 자신이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등이라는 결말을 이미 선고 받은 것처럼 무기력한 플레이가 이어졌다. 아쉽게 졌다는 느낌보다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의식이 팀을 갉아 먹기 시작했다. 전반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장이었던 한희훈의 절절한 연설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는가 싶었지만 현실은 그 이상으로 냉혹하게 다가와 있었다. 승격이라는 업적을 쌓은지 2시즌만에 우린 또 다시 올 것이 왔다는 다짐을 마음 한 켠에 마련해두어야만 했다.

 

헤아릴 수 괴로움에 허덕이던 그 해 6월, 애타는 리그 상황을 뒤로 하고 러시아에서는 월드컵이 열렸다. 평소 같았다면 그저 이벤트 정도로 여겼을 월드컵이었겠지만 이번 월드컵은 그래도 느낌이 달랐다. 당시 대구 소속이었던 조현우가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주말이면 늘 지끈한 두통에 시달리던 나는 같은 증상을 보이던 다른 지지자들과 함께 짧은 시간이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이국에서의 월드컵에 잠시 시선을 돌려보기로 했다. 잠시나마 축구로 부터 오는 불행을 잊고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조현우가 나오는 경기를 볼 것이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아주 약간 품고 있는 희미한 희망을 빼고는.

 

뜨거운 열기가 밤그늘 아래에서도 여전하던 여름. 우리는 대구 스타디움의 이웃 동네인 라이온즈 파크에 모여 들었다. 축구장이 아닌 낯선 야구장에서 축구를 본다는 것도 독특했지만 말끔하게 지어진 새 경기장을 보고 있으니 전용구장에 대한 기대도 생겨났다. 그렇게 팀 성적을 잠시나마 잊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첫 경기를 기다리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팀 주전 골키퍼 조현우는 당당히 대구FC 이름을 달고 선발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 순간 러시아 월드컵은 우리에게 짧은 위로 공연이 아니라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대구FC 선수가 세계 최고의 축구 이벤트인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뿌듯함을 느꼈다. 우리도 이런 선수를 내세울 수 있구나. 우리도 우리 클럽의 이름을 전세계에 내보낼 수 있구나. 라는 뜨거운 자부심이 솟아났다. 

 

화려한 월드컵 데뷔를 마친 조현우는 이후 러시아 월드컵 전 경기에 출전하며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거듭났다. 구단 창단 이래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조현우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대구의 사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현우라는 조명 아래 대구 사람들의 관심은 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부진한 팀 성적과는 정반대로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조짐은 분위기에서만 느껴지지 않았다. 중간 영입 시즌 대구는 조세, 에드가, 츠바사를 연이어 불러 들이면서 세징야로만 이루어진 빈약한 공격진을 한층 강화했다. 특히 부리람에서 전북을 침몰시킨 선봉장이었던 에드가의 합류는 부족했던 최전방의 결정력을 타개할 중요한 카드로 손꼽혔다. 분위기 반전과 전력 강화, 시즌 휴식기 동안의 전지 훈련을 거친 구단은 전반기의 무른 모습과 달리 좀 더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우리 역시 오랜 골대 뒤 생활로 생겨난 직감으로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다. 물론 대단한 야망이라기 보단 언제나 그랬듯 강등은 면하지 않겠다는 얕은 기대감에 불과했다. 여하튼 우리 나름대로 반전을 위한 모든 준비는 마쳤다. 남은 것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운명에 맡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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