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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재글. 그 겨울의 탄생 #2

AzureL'ete title: 작가콘AzureL'ete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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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6년 대구FC가 2부 리그를 전전하던 시절, 난 돌연 응원을 그만뒀다. 팀이 어려운 시절 응원을 관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소속되어 있던 소모임의 활동기반이 약해지면서 다양한 활동에 제약을 느꼈고, 날이 갈수록 성장해가는 다른 지역 서포터씬을 보며 왠지 모를 한계가 느껴졌다. 게다가 소속되어 있던 소모임의 강성적인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서포터 내부의 눈치와 보이지 않는 갈등에 지쳐 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더군다가 취업 이후 바뀐 생활에 적응하면서 더 이상 축구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변명도 생겼다. 팀을 지키기 위해 단장 퇴진을 위한 1인 시위도 나서고, 90분 내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응원했지만 이 때엔 모든 것에 지쳐버렸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에 굴복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 달콤함에서 헤어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골대 뒤에서 입버릇처럼 말했던 이제는 때려 치워야 겠다는 말을 정말로 실천한 후 그렇게 스타디움에서 우리의 북소리와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도 습관이란 무서워서, 응원만은 입을 꾹 닫은 채 홈, 원정을 가릴 것 없이 많은 경기를 보러 다녔다. 골대 뒤의 응원가가 늘 같은 셋 리스트로만 채워져 있어도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인천, 수원 같은 대형 팬덤을 이끄는 클럽이 원정을 오는 날이면 홈이라는 이점이 무색해졌지만 그마저도 애써 무시했다. 이러한 광경 속에 누군가 새로운 물결을 틀고자 하는 이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처럼 건방지고 싶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보잘 것 없는 자존심을 한껏 세우고 있었다. 후련함과 아쉬움이 물과 기름처럼 공존하지 못한 채 대립을 이어갔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습한 대구 더위만큼이나 끈적이고 불쾌한 2018년의 절반이 지나던 어느 날 서포터 활동을 하면서 가장 뜻이 잘 맞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 그랬듯이 별볼일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누가 못하니, 어디 응원이 어떠니, 우리 응원은 어떠니 각종 평론이 끝나고 나서야 용건이 나왔다.

 

“다시 응원 하는거 어떻노?”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테다. 2003년 팀이 만들어지던 해부터 대구를 응원해오던 나로선 서포터 활동이 당연한 일이었다.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마음껏 노래 부르고 뛰어노는 것은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이었다. 가끔가다 터지는 득점과 승리의 환호성은 그 어떤 마약보다도 강한 중독성을 자랑했다. 특히 2011년 제대 후 가입한 울트라스 도미네이터에서의 활동은 서포터로서 팀에 대한 로열티, 강한 연고 의식과 주체적인 응원 문화 주도에 대한 많은 지식과 의지를 불태우게끔 해주었다. 그러던 나에게 있어 골대 뒤는 어느 곳보다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고향과도 같았다. 이런 지경에 이르다 보니 다른 곳에서 점잖이 축구를 보는 것은 안 보는 것보다 더한 권태감을 느끼게 했다. 응원하며 보는 것에 대한 갈망은 정작 골대 뒤에서 멀어질수록 커져만 갔다. 그렇게 참을 수 없는 욕구와 고개 들기 힘들 민망함을 함께 껴안으며 응원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가 다시 골대 뒤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는 어려울 때 팀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철새 같은 놈이라고 수근거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내린 이상 그런 눈총 따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더 늙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즐겁고 뜨겁게 응원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다른 클럽의 골대 뒤에 뒤지지 않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누구에게나 인정 받는 서포터 클럽이 되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하나된 목소리의 거대한 환희를 느끼는 일상. 유럽과 남미의 우렁한 목소리, 월드컵의 희열이 넘실거리는 주말을 만들겠다는 포부. 이러한 파편의 조각들을 모아 골대 뒤로 향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하게 두근거렸다. 하반기 리그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서둘러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친구와 난 자주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둘 다 이러한 날을 기다린 듯 다양한 아이디어를 꺼내 놓았다. 응원할 장소를 정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모임 이름도 정했다.

 

PROJECT191.

 

새로운 응원 문화를 만드는 프로젝트성 모임이라는 뜻에서 PROJECT를 붙였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새로운 대구만의 로컬 서포터 씬을 만들어 나가자는 계획이었다. 숫자 191은 당시 새로운 전용구장을 짓고 있던 곳의 주소였던 고성로 191에서 착안했다. 태초에 대구를 향한 응원이 시작된 대구스타디움 N석에서 마지막 해를 보내며 뜨거운 응원 열기를 채워 고성로 191로 옮겨 가겠다는 의미였다. 슬로건은 New Generation, New Start. 새로운 물결, 새로운 시작을 향한 염원도 내세웠다.

 

2018년 7월 8일 후반기 첫 홈경기, 나와 친구는 가변석과 그라지예라는 단체를 벗어나 대구FC를 향한 응원이 시작된 대구스타디움의 노란색 N석에서 거창한 이름을 달고 단기성 응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대에서 벗어나 독단적으로 응원을 준비했기에 사비를 들여 악기와 확성기를 구매하고, 클럽 걸개와 조현우, 세징야를 위한 대형 걸개를 준비해 내걸었다. 더 멀어진 곳에서 경기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응원을 통해 목소리를 전할 수만 있다면 우린 시야 따윈 애초에 상관 없는 사람들이었다. 소수였기에 N석 안쪽 지붕 아래 울림을 이용해 더 큰 소리가 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북을 몇 번 쳐보니 확실히 웅장한 느낌이었다. 심장 박동 같은 북소리에 가슴이 다시 뛰었다.

 

N석이라는 황망하지만 큰 가능성을 품은 공간에서 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다. 갑자기 축구장으로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응원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싶었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물결을 내고 싶었다. 가변석이라는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응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새 응원가를 부르고 대구를 빛낼 수 있는 더 큰 스케일의 응원을 하고 싶었다. 이윽고 킥오프 휘슬이 울려퍼지고 나의 응원 역시 이제 다시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어찌저찌 2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쓰는게 민망한 일이지만 재밌는 일이기도 하네요.

https://daegusto.me/free_board/1563241 - #1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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