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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피니언] 축구장에서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AzureL'ete title: 작가콘AzureL'ete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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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적인 단상일 뿐 어떤 단체에 의한 공식적인 의견이나 객관적 의사 표현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우선 대구 팬페이지 개설을 축하드립니다. 쓸데없는 웹페이지 낭비가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네요.

기쁘거나 화나거나 슬프거나 하면 자주 배설하고 가겠습니다.

DAEGUSTO는 누가 지은 이름인지 참 잘 지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대구FC는 마지막 라운드를 승리로 장식하며 승격이라는 소중한 열매를 성공적으로 수확해냈다. 대구FC는 대전과의 일전을 1골로 이겨내면서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인내해왔던 2부 리그에서의 암울한(?) 시기를 떨쳐내고 다시 영광스러운 1부 리그의 자리로 올라섰다. 나 역시 대구FC를 응원하는 서포터즈로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금할 길 없이 그 경기를 기대해왔고 충분히 즐거운 마음으로 즐겼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직후 한 SNS에서 "평소엔 응원도 안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경기니까 몰려와서 팬인척 응원을 한다", "비기거나 질 때 응원하지 않으면 이길 때도 응원할 수 없다"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평소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그들의 태도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기는 했으나 해당 글을 읽고 나서는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공개된 장소인 SNS에 당당하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원색적인 불만을 내비추는 것에 상당한 반감이 들어 첫 글 소재로 삼고자 마음 먹었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클럽에 대해 응원하지 않고 욕하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즉, 원론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들의 그런 의견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표현의 자유, 행복추구권과 같은 것들을 사회적인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고, 그 가치의 합당함에 대해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인정하고 있다면,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표현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함부로 결단하고 정의내려서는 안된다. 물론 SNS의 저 글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점에서 게시가 가능하다. 하지만 나의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너희는 그러니까 하지마!" 라는 식의 말이 공개되는 순간부터 누군가를 함부로 결단하고 정의 내리게 되고,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매도하는 행동이 되므로 공감하기 어려운 글이 되기 쉽상이다. 특히 특정한 인물이나 단체를 상대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므로 축구장을 찾는 팬들 중 저러한 행동을 하는 모두가 저 글에서는 "응원할 권리도 없는 놈들"이 되어 버린다.

 

축구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의 책 '축구란 무엇인가'에서는 축구장, 특히 응원하는 팬들의 공간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축구 스타디움 ... 이 곳에서 만큼은 ...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목을 끌어안을 수 있고 그치지 않는 환호를 내지를 수 있고 거리낌 없이 고함칠 수 있고, 악쓰고, 휘파람 불고, 야비한 악담과 상소리를 내지를 수 있고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절망을 마음껏 폭발하도록 할 수도 있다." 축구장은 집단적 열광이라는 흥분 속에서 각자의 표현 방식에 따라 일상에서 허용되는 선 이상의 표현도 허락되는 공간이다. 선수단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나 욕할 수 있고, 1분이라는 짦은 시간에 골을 넣고 이기면 방금 전까지 욕하던 사람이 눈물 흘리며 우승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도 있는 곳이 축구장이라는 곳이다.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너는 응원할 권리가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 적어도 축구장에서는 합법적이라는 전제 하에 누군가가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다. 그러한 흥분과 자유분방함이 하나로 뭉쳐 감정의 흐름을 따라 흐르고, 때에 따라서는 폭발하고 침몰하는 과정 속에 축구장의 진정한 가치와 열정이 생겨나는 것이며,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축구를 사랑하게 되고,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의 절곡을 넘나들며 우리 팀에 대한 애정을 피어내게 된다. 2002년 월드컵 그 넓은 대로를 막고 욕도 하고 울기도 하고 기뻐 날뛰기도 하면서 우리는 축구를 사랑하게 되고, 더불어 잊을 수 없는 희열을 선물 받았지 않은가?

 

물론 일괄적인 응원, 누구나 욕하지 않고 선수단만을 응원하는 모범적인 스토리를 누군가는 꿈꿀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남은 축구장이라면 누가 축구장에서만 생겨나는 격정적인 태동을 느끼고 돌아가게 될 것인지는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축구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울 권리가 있고, 누구에게나 욕하고 기뻐하고 슬퍼할 권리가 충분하게 주어진다. 물론 응원하지 않고 조용히 볼 권리 역시 당연히 주어진다. 이러한 권리들을 축구장을 찾은 사람들이 충분하게 누릴 수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축구장이 일상을 벗어나 희노애락이라는 다양한 감정을 누리는 훌륭한 여가 장소로 인정받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축구가 주는 날 것 그대로의 그 흥분을 전달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덧붙여서 (앞전 이야기는 다 헛소리였다.) 나를 포함한 저러한 발언을 듣는 사람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 대구FC를 좋아해서 축구장을 찾아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치적이고 부패한 권력으로부터 시민들의 축구단을 지키기 위해 불필요한 다툼과 손해를 감내하면서도 축구장을 찾아 구단의 순수성을 지켜냈고, 시청 앞에서 구단주인 대구광역시장을 향해 소리치고 피켓을 들며 축구가 아니었더라면 생전 인사 나누지도 않았을 민주노총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주제는 다르지만) 1인 시위까지도 나섰던 사람들이다. 과연 전반전 내내 도시락 먹고, 승기를 잡으면 응원석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저러한 얘기들을 쏟아낼 수 있을까? 특히 이와중에 서포터즈 회장을 챙기는 부분은 가히 실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지고 있을 때도 응원하라던 사람들이 팀이 밑바닥을 기어다니고 감독 비리, 승부조작으로 얼룩졌을 때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내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손 잡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함께 기뻐해도 모자랄 승격이라는 시기에 찬물을 끼얹는 파시즘적 발언을 내뱉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럽고 앞으로 서포터즈의 미래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 다음 주제 : 그라지예의 미래와 해체

 

 

azurelete / DMNT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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