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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피니언] 그라지예의 해체에 대해서

AzureL'ete title: 작가콘AzureL'ete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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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오피니언 말미에 써보겠다고 했던 내용이지만, 그 처음을 적는 것조차 어려웠다. 처음 초고를 쓰고 나서는 주장이 명확하지 않고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한동안을 하얀 종이로만 남겨두다 미룰 수 없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렵지만 그 운을 뗀다.

  사실 그라지예는 본인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대구FC가 창단하던 시절부터 축구를 응원하면서 봐왔고, 축구장에서 즐기고 노는 응원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뜻이 같은 사람들과 많은 시간동안 토론하고 고민했다. 밤을 세워가며 축구 문화가 발달한 국가의 응원 특징이나 역사들을 탐구했다. 나름대로 애정을 쏟아온 모임에 대해 부정적인 비판의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그라지예를 대표하는 역할을 했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며, 이런 의견을 주장해야만 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도 큰 책임을 느끼는 바이다.

 

  그라지예의 역사는 2002년 구단의 창단과 함께 시작되었다. 대구FC 서포터즈의 구성이 그쯤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대구FC서포터즈연합(이하 ‘연합’)에서 출발한 서포터즈는 그라지예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대구FC 지지자 연대(이하 ‘연대)라는 기능적 명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라지예라는 이름이 2011년말 회원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일 뿐 연합, 연대의 역사를 잇고 있는 것이다.

  그라지예는 최장 2년의 임기를 갖는 회장을 중심으로 각 소모임이 대의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한다. 회장이 예산집행과 현장(응원)을 구성하지만 각 소모임이 이를 견제하고 의견을 제시한다. 이런 운영 방식은 각 소모임의 의견이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어 연대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운영 방식이 장기적으로 고착화되고, 소모임의 구성원 축소 등으로 대의원회 역할이 대폭 줄어들면서 갈수록 연대의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

 

  소모임 간 연대를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던 그라지예는 연대 자체가 불안해지면서 현재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구단에 대한 비판의식이 결여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본래 대구FC 서포터즈가 갖고 있던 구단을 상대하는 태도는 조직편향을 해체시키는 ‘레드팀’과 같았다. 구단 의견에 대해 비판적인 편에 서있는 경우가 잦았고, 협조하더라도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구단의 행정적 또는 외부 인사 등에 대한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심지어 1인 시위나 구장 내 안티서포팅 같은 ‘행동’도 보여주곤 했었다.

 

김재하 단장의 사퇴 시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펼친 그라지예 [출처=(좌)스포츠조선, (우)영남일보]

  그라지예의 구단에 대한 비판적 역할는 시민구단 특성 상 작용할 수 있는 외부 입김을 차단하고, 구단 내부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 그라지예는 비판적인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판적인 의견을 내지도 않고, 낼 의지 역시 없어 보인다. 구단 측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의견’ 또는 ‘행동’은 2014년 이후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나마 있었던 청춘FC 친선전 차출 반대 성명서 역시 단독이 아닌 타 팀 서포터와의 연대 성명서였다. 대구FC의 마케팅이나 행정 운영 역량이 예산이나 인원, 맨파워 부족으로 타 대기업 팀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임에도 이에 대한 비판을 전혀 해오지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서포터즈 활동을 해오면서 가장 고민하고 걱정해왔던 부분이 바로 서포터즈라는 조직이 갖는 ‘특권의식’이었다. 서포터즈의 특권의식이라 함은 일반 관중과 서포터를 분리해서 인식하거나 구단으로부터 특별한 권리를 부여 받기를 원하는 자세, 또는 서포터즈라는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만 구단의 특별한 권리를 챙겨주며 그들만의 응원, 그들만의 N석을 구성하는 행태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라지예는 점차 대구FC의 공식 서포터즈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공식이라는 말을 등에 업은 순간부터 서포터즈는 관중 전체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관중 전체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으로 비추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 자연스럽게 구단이 부여하는 각종 혜택이나 권리 역시 서포터즈가 우선적으로 부여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자체가 바로 ‘특권의식’을 부여 받은 서포터즈로 변질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서포터즈도 일종의 ‘조직’이기에 어떠한 권리를 내부적으로만 공유하거나 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것은 스스로 창출해낸 권리여야만 한다. 구단에서 부여하는 공통적 권리를 모든 팬이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포터즈가 잠식하여 자신의 울타리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

  한편 서포터즈에 가입된 사람들을 충성고객으로 인정하고 혜택을 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장에는 서포터즈가 아니지만 대구FC를 응원하는 팬들이 훨씬 더 많다. 또 응원을 하지 않지만 대구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충만한 팬 역시 많다. 그렇다면 과연 응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라지예는 그렇지 않은 팬들에 비해 더 충성스러운 소비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재 그라지예가 처한 현실은 그 어느 시기보다도 암담하다. 지지자 연대 체제로 나선 이후 울트라스 성향으로 만들어져 연대의 현장응원을 주도하던 소모임 도미네이터는 한 때 회장을 배출하기도 하고, 연대의 조직 구성이나 운영에 큰 힘을 쏟았지만 2013년 시즌 이후 대다수의 회원이 N석을 찾지 않고 있다. 또 많은 수의 회원들이 참가했던 여성 소모임 예그리나 역시 2016년 연대를 탈퇴한 이후 N석을 찾지 않는다.

시민운동장 시절 예그리나와 도미네이터 [출처=대구FC]

  또 가변석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회원권 위주의 고객만 가변석에 입장이 가능하면서 신규 회원의 가입이나 응원 활성화는 점차 활기를 잃어만 갔다. 오히려 좁은 관중석에 소수의 서포터들만이 모여 있다 보니 그 고립화가 더 심화되는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했다. 침체가 지속되면서 응원에 대한 다른 팬들의 관심은 거의 전무하고, 그라지예 내부 회원들의 발걸음 역시 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존재감 없이 자리만 유지하는 꼴이 된 것이다.

  현재의 축구장에는 서포터즈가 있어야 할 배경이 없다. 응원을 재밌어 하는 사람도 적고, 응원을 발전시켜 나가려는 사람도 없다. 스스로가 신나지 않은 응원을 하는데 누가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연대가 존재해서는 결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만약 새로운 응원 소모임을 누군가 만들었다 해도 사실상 ‘공식화’된 그라지예라는 연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벽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설사 가입을 한다 해도 지원이나 협조 -금전적인 지원이 아닌 감정적인 분위기 조성 등을 의미한다.- 를 해주기 힘든 현재 연대의 상황은 새로운 소모임을 맞이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앞서 살펴본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그라지예라는 연대의 해체가 필요하다. 지금 대구스타디움에는 응원에 열의를 가진 남녀노소가 모여 다양한 의견을 수시로 제시하고 그 의견을 토대로 자발적인 응원을 축구장에서 실행해보는 새로운 흐름의 서포터들이 필요하다. 의무화된 서포터즈, 활발한 토론과 발전이 없는 서포터즈는 그저 관중석 한 구석을 점거한 채 구단의 마케팅 시야를 좁게 만드는 원흉이 될 뿐이다. 각자가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응원 소모임이 생겨나려면 지금 침체된 분위기로 방치되어 있는 연대를 해체해야만 한다.

  제각기의 철학이 있고, 방향성이 뚜렷한 새로운 응원 모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그 의견이 많을수록 다양하고 창의적인 응원들이 나타날 수 있으며 축구장 분위기 역시 한층 더 재밌고 흥미롭게 바뀌게 된다. 구단 프론트 역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으므로 보다 많은 관중들이 만족할 수 있는 마케팅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 없는 응원그룹의 응원은 오히려 힘을 빠지게 만든다. 지금 대구FC 프론트는 그라지예에게 응원과 축구장 분위기 조성을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체된 그라지예는 그러한 축구장 분위기 조성과 응원에 대한 역할을 결코 해나갈 수 없다. 오히려 분위기를 침체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축구장의 분위기나 흥미 유도는 프론트가 해야하는 일이다. 구단 운영진이 다양한 이벤트와 아기자기한 매치데이 프로그램을 구성, 제공하여 축구장을 찾는 팬들이 스스로 응원하고 탄성을 내지르고 재미있어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도 서포터즈가 축구장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보다는 구단 자체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다양한 팬 층을 흡수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축구 실력으로 대구에 축구붐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조광래 단장의 방향성에는 오히려 이런 형태의 축구장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물론 서울 이랜드의 사례와 같이 서포터즈의 구성 자체를 제한해서는 안된다.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축구를 보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응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 끝에 서포터즈라는 모임이 생겨나는 것인데,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다면 누가 응원을 생각할 것인가. 다만 구단이 특정 응원 모임에게 접촉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없애야만 한다. 앞서 말한 ‘공식화’되는 서포터즈가 더 이상 축구장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전 관중이 동등한 입장의 팬이자 개개의 서포터인데 누가 공식 서포터즈를 구성하고 팬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군중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하나의 장소에서 각자의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면 감정의 파편들이 융합되고 해산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 중간에 각자의 감정이 순간적으로 조합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학적 의미로는 ‘여론’이고, 축구장에서는 집단적인 ‘응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관중 전체의 에너지가 응집되는 순간이 지속화될 때 관중 전체에 의한 조직적 응원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며, 이 때 구단의 적절한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대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그라지예와 같이 규정화된 응원 모임이 존재한다면 그라지예에 속하지 않은 각자의 응원이 축구장 내부에서 표출되기 어렵다. 서포터가 아닌 관중들이 “축구장 응원은 그라지예가 하는 것이다.” 라고 여기면 각자의 감정이나 의견을 표출해내기 위한 노래나 콜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게 된다. 그라지예라는 지붕이 각 개인 감정의 표출을 가려버리고 있기 때문에 관중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는데 흥미를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현재 그라지예가 자발적으로 해체한다면 하나의 조직에 집중된 응원의 역할, 재미, 그리고 에너지를 전 관중에게 분산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비록 그라지예가 해체되어도 응원을 원하는 본래의 서포터들은 지금과 같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축구장을 찾으면 된다. N석을 벗어나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뛰놀면 되는 것이다.

이제 N석에서만 응원하던 시기는 끝이 났다. [출처=대구FC]

  앞서 말한 에너지의 응집을 만드는 배경에는 선수단의 실력과 구단의 마케팅 능력 그리고 기초적인 응집을 만들어내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응원을 하지 않던 사람들 중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사람은 많지만, 그 과정에서 폭발하는 에너지를 응집시켜 응원을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응원을 즐겼던 사람들은 응원가를 부르고 콜을 외치는 역할에 익숙하기 때문에 골이 터지거나 결정적 순간이 이어질 때 자연스럽게 응원을 시작함으로써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는 역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축구장의 열기와 그 열기를 만들어내는 응원은 N석을 벗어나 다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해야만 한다.

  K리그가 만들어질 당시 권력의 필요에 의해 구성된 결과 지금처럼 흥행과 인식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서포터즈 역시 서포터즈를 위한 서포터즈로 구성되는 것은 지금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이제는 자발적인 응원이 축구장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바로 그라지예의 해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연대의 틀을 벗어날 때 더 큰 연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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