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산정집>

 

한 15~20년 전 쯤에 슈퍼에서 판매되던 '고기말이'를 아시나요? 속엔 당면과 야채가 들어가고 겉을 돈육으로 돌돌말아 냉동으로 팔던 제품말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그 고기말이를 참 좋아했습니다. 나름 야채(?)도 먹는 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가장 반했던 것은 조리할때 돈육의 육즙이 야채로 스며들어 한 입 배어물면 고기와 육즙, 야채가 한데 어우러지는 맛은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맛입니다.

 

그러다가 나이들어 자취를 시작하고부턴 마트에서 파는 냉동제품과 한동안 인연이 없었는데, 최근에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봤더니 파는 곳이 없더라고요. 인터넷에 팔긴 파는데 대용량이라 주문은 꺼려지고. 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곳이 오늘 말씀드릴 산정집입니다.

 

이 가게의 풀네임은 조금 깁니다 <박순례 손말이고기 산정집>. 보통은 산정집이라고들 하더군요. 본점은 원주에 있습니다. 원주 본점은 갈 기회가 없어 광화문점을 애용하는 편입니다. 본점이 좀 더 맛있다고 하는데, 제 입맛에선 광화문점도 훌륭합니다.

 

일단 앞서 말씀드린 냉동 고기말이의 초초초 업그레이드 판입니다. 겉을 싸고 있는 고기가 돈육에서 소고기로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마블링이 철철넘치는 딱봐도 상등품인 우둔살. 굽기시작하면 순식간에 지방이 녹아들어갑니다. 속에 있는 것은 쪽파와 미나리. 씹는 맛도 좋고, 미나리의 식감과 향이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줍니다. 대구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서울에선 미나리를 식당에서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괜시리 더 반가워지는 식재료입니다. 

 

고기가 그리 두텁지 않아 자주 뒹굴어주며 네 면을 차곡차곡 익힙니다. 다 익으면 특제 겨자소스에 찍어서 먹으면 됩니다. 고기말이 자체가 단맛이 많이 배어있어서 이 소스로 밸런스를 잡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 소스에 후추를 좀 더 첨가해서 알싸한 향을 더하는 편입니다. 

 

한입 배어무는 순간, 고기의 육즙과 야채의 식감과 향, 소스가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훌륭한 술안주 역할을 합니다. 맥주, 소맥, 소주 어디에도 잘 맞는 음식입니다. 사진에 있는 량이 1인분 정도니까 인당 1인분씩 시키면 그리 부족하진 않으실 겁니다.

 

후식으론 된장찌개가 있습니다. 고기말이를 구웠던 철판 위에 바로 된장찌개와 밥을 넣어 비벼먹는데요. 고기 육즙이 섞인 구수한 된장찌개와 밥이 2%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채워줍니다. 

 

코로나때문에 조금 자리잡기가 수월하지만, 평소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기 힘든 곳입니다. 꼭 사전에 예약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간혹 자리가 남으면 혼자 오는 손님도 받지만, 이땐 꼭 2인분 이상을 주문해드셔야 합니다. 저도 나름 양이 있는데 혼자 2인분에 된장찌개는 좀 무리이니, 가능하면 파티원을 구성해서 방문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5가길 3-10 선덕빌딩 2층

월~토 1200~2130(B.T 1400~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