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못 <아리조나막창>
수성못 근처에 사는 사람들 치고 이 집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근 20년 동안 수성못 인근에 자리잡아 사랑받은 곳입니다. 저와의 인연도 깊은 곳인데요. 서울 상견례를 코리아나 호텔 일식당에서 했는데 대구 상견례는 아리조나 막창에서 했습니다. 와이프나 저나 이 집 막창엔 사족을 못쓰다 보니 벌어진 일입니다.
저는 일단 생막창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굽기도 쉽지 않고,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맛도 삶은 막창에 비해 맛도 떨어지는 듯한 느낌. '삶은 막창 다 비슷한 것 아니냐'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아리조나는 뭔가 다른 맛이 있습니다.
아주 다른 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다른 느낌들. 막창, 막창, 재래기, 된장찌개. 어느 것 모두 독보적인 best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다른 집에 갔을 때 느끼지 못하는 희귀한 맛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움과 정겨움.
타지에서 오래 살다보니 막창 먹을 일이 드뭅니다. 일단 파는 집 자체가 적고, 판다고 해도 대구에서의 그 맛은 더욱 찾기 힘들죠. 여러분은 견딜 수 있으시겠습니까? 10원이 아니라 1원 동전보다 작은 막창, 막장이 없는 막창. 서울사람들이 대구 출신 챙겨준다고 막창집 데려가는데 막창 코스프레 수준도 안되는 것을 보며 절망했었죠. 양념막창이란것도 있는데 도대체 그런 걸 왜..
여튼 그렇게 고통받다가 대구내려오면 집에 가기전 항상 먼저 찾는 곳이 아리조나입니다. 상이 차려지면 막창을 불에 올리고, 거친 참소주로 목을 씻어준 다음, 자기만의 비율로 파와 청량고추를 섞으며 맛을 봅니다. 대충 술 한잔돌고 세팅이 끝나면 지글지글 익기 시작하죠. 다 익을 즈음 다시 술잔을 기울이고, 안주로 잘 구워진 막창을 장에 찍어먹으면...
돌아왔다는 걸 느낍니다. 소주 두 잔으로 취기가 슬슬 올라가면 서울에서 사느라 기름진 말투도 슬슬 둔탁하고 거친 본래 대구말씨로 조금씩 변하죠.
제가 아리조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 모든 기분을 자연스럽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음식들이 언제든지 맛깔나게 준비되어있다는 점일 겁니다. 막창이란 것이 조금만 손질 잘못하고, 장이나 재래기가 좀만 이상해도 입맛을 버립니다. 흔하다곤 하지만 그만큼 또 잘하기는 어렵죠. 그것도 계속하는 건 더.
오래된 맛집이라도 맛은 자주 변합니다. 변치 않는 맛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해 대구를 떠나던 그 시절과 이제 취업하고 결혼도 하고 아버지 환갑 챙기러 내려왔을때 먹은 그 맛이 같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맛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유일한 불만은 소주맛이 옛날같이 않고 밍밍하단건데 이건 뭐 금복주 잘못이니 여기다가 쓸 이유는 없겠네요.
대구 수성구 용학로25길 45
매일 160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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